솔직히 말씀드리면 비밀은,

생활 속에서 틈틈이 '영어 두뇌 만들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8. 틈틈이 올리는 글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요?

박승균 2012. 1. 10. 23:29

가까운 형에게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미국 드라마를 들을때, 의미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소리만 듣고 앉아 있으라고 네가 추천했는데, 과연 이런 방법을 통해 영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인가?"

제가 그 형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아도, 이런 의구심이 충분히 들 만합니다. 영어를 자기나라 말 처럼 자유자재로 쓰고 싶어서 제가 권하는 방법대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의미 파악을 하지 않은 채로 소리 듣기에만 집중에서 처음 몇 달을 보내라는 권고를 듣고 곧이 곧대로 실행하기가 어려울 듯 합니다.

역설적입니다.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영어를 잘 알아듣고, 영어로 말을 잘 하는 것인데, 처음 영어를 시작하는 분들께 제가 권해드린 방법은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 파악은 전혀 배제하고 '소리 듣기'에 집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영어 교육은 영어 의미 파악을 빠르게 하는 교육이 많았습니다. 사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도 영어 소리 자체를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전달되는 정보나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나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우선 '소리 듣기' 목표만 갖고 6개월을 보내기를 권해드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소리 듣기'를 먼저 하라고 권해 드린 이유는 소리를 인식하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모국어를 배울 때 소리를 먼저 접하며 모국어를 배우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는 대체로 부모님의 언어를 자신의 첫번째 언어로 배우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글자를 보고 언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문법을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부모님의 말소리만 듣고도 그 언어를 배운 것입니다. 사람의 말소리에 익숙해지고, 두뇌는 말소리의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의미없는 소리를 차차 반복하여 들음으로서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 어린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어린 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소리를 자주 접해서 소리를 인지하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첫걸음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리와 철자가 완벽히 일치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문맹률이 낮습니다만, 다른 나라에는 문맹자들이 존재합니다. 이 문맹자들은 쓰여진 글을 알아보는 것 이외에는 모든 언어 기능을 충분히 실현해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글을 알아보고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언어 활동의 필수 기능은 아닙니다.

우선은 소리를 알아듣고, 그 소리 자체에 두뇌가 익숙해지는 것이 언어 활동의 기본입니다.

소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소리를 듣고 머리가 인식하고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재현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께서 일본어나 중국어를 들으면 의미는 모르더라도 방금 들었던 문장을 그대로 따라서 소리낼 수는 있습니다. 그 언어의 음가 자체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영어는 그대로 재현해내기 어렵습니다. 영어 소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충분히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시고 영어 소리에 익숙해지면, 순간적으로 방금 들었던 말을 떠올려보면, 머릿속으로 그 대사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으로 재현해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발음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많이 쓰는 발음이고, 어떤 발음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쓰지 않는 발음인지 서서히 인식하게 됩니다. 영어 활자를 보더라도 머릿속에서 소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소리에 익숙해지면, 외국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후루룩 넘어가는 느낌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 하나하나가 들리게 되고, 모방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소리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뜻을 모르더라도 소리를 모방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조금 신기한 일이지만, 뜻도 모르면서 소리만 계속 모방하고, 소리에 익숙해지다보면, 그 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말을 사용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모국어 형성기가 끝나고 나서 새로 배운 말들은, 그 뜻을 자세히 찾아보며 배운 것이 아니라, 여러번 들으면서 소리에 익숙해지고 머리가 알아서 그 소리를 인식하게 되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쓰는 타이밍에 따라서 그 단어를 구사하면서 새로운 말을 배웠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에 익숙해지고 그 소리를 잘 인식하고, 모방도 하게 되고, 반복해서 소리를 모방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사람의 인지는 원래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한 대상일지라도 단순히 반복노출된 대상에 안다고 착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사람의 인지입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들을 보세요. 뜻도 모르고 그냥 떠듭니다. 근데 그것이 언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뜻도 모르고 계속 떠들다가, 커가면서, 자기가 알던 소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배우게 되고, 발음도 점점 다른 사람들의 발음을 들어가며 수정해나가는 것입니다.

제 관점에서 볼때는, 단어 뜻도 모르고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 전개도 이해하지 않고, 오로지 들려오는 영어의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처음에 최소 6달은 영화나 드라마를 실천해주셔야,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 수 있는 언어 감각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좋으셔서 드라마를 보는 순간 내용 이해가 잘 되고, 앞의 내용까지 상상이 되는 분들이 오히려 영어를 배우기 어렵습니다.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은 그 동안 만큼은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해주셔야 합니다.

영어 소리를 머리가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영어에 대해서는 스폰지가 됩니다.
그냥 읽고 듣는 대로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는 노래 가사까지도 종종 들립니다.
스폰지가 된 상태에서 영어 동화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더 보면, 그 순간부터 영어 실력이 향상하는 속도를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영어 단어 많이 알고, 문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보다,
들은 문장을 (뜻을 알던 모르던) 즉석에서 똑같은 소리로 줄줄줄 읊어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것에 가장 근접해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시거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시거나, 주변의 사례를 총 동원해서 생각해보세요. 여러분께서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계시다면, 앞으로 6개월간 단어 공부와 문법 공부를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6개월간 주구장창 영어 소리를 들어서 방금 들은 영어 한 문장 정도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어렴풋이 남는 상태 또는 명확히 남는 상태 또는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낫겠습니까? 여러분들은 6개월 후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고 싶으십니까?


좀 거칠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리 시간과 돈을 들여도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무한루프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하우로서 '소리 듣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